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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노트/일상끄적

시절인연, 진짜로 떠나보냈다

by 꿀꿀달달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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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 친구와 안녕을 말했다.

내가 좋아했던 친구이다. 당당하고 당돌한 아이였다. 이쁘게 생겨서 눈이 가는 아이였고. 함께 있으면 웃을 일도 많았다.

당당하고 당돌한 만큼 친구는 자기 주장이 강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나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과는 다르고 또 솔직해보여서 좋아했다. 나한테 와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관심이 생긴 것, 사람들 앞에서 망신 당한 일.. 다 얘기 했으니까.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며 많이 웃고 재미있어 했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먹고, 자고, 같이 공부하며 함께 쌓인 추억이 많았다. 자기주장은 강해도 예의있는 아이라 불편을 느끼며 지낸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 얘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계도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가 바빠졌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었다. 나는 일에 파묻혀 지쳐있었고 여유가 생기면 온전히 쉬는 시간이 필요했지 다른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반면에 친구는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를 해냈고 이혼을 겪으며 다른 누군가를 만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친구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 나를 자주 찾았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싱글이니 시간 내기가 쉽다고 생각했으리라. 힘들어하는 친구한테 잠깐 시간 못내주겠냐는 마음으로 만남을 이어갔지만 문제는 거기서 부터였다. 자기가 원할 때는 당일에도 연락해서 시간잡기 일쑤였는데 간혹 내가 시간이 생기거나 필요할 때는 안된다는 핑계를 대며 연락이 잘 안되기도 했다.. (대부분 직장 일이 갑자기 생겼거나 육아때문이었고 당연히 이해해줘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내 입장에선 그 친구는 나의 이야기는 들을 마음이 단 한번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본인이 원해서 약속을 잡아뒀어도 본인 사정이 바뀌면 본인에게 유리하게 일정을 바꾸거나 장소를 바꾸었고, 사정이 있었는데 깜빡했다며 당일날 태연하게 연락하기도 했다.

점점 이 친구와는 함께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한 무렵이다. 삶의 굴곡과 아픔을 말하며 나를 찾았던 친구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정작 나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 가는 친구와는 더이상 함께할 수 없었다. 반평생을 함께해온 이 친구와 앞으로 계속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야 할 때였다. 일방적인 만남도 싫고, 약속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것도 이 친구랑 더이상 하기가 싫어졌다. 그나마 예의지키며 말하니까 크게 뭐라 말하기가 애매했는데 결론적으로 우리 만남의 진행 과정은 이런 식이였다.

결국, 또 한번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그냥 약속을 취소해 버리고 잘못된 태도를 꼬집어 말했다. 처음에는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더니, 점점 자기 화를 못이겼는지, 나에 대한 모욕, 나의 인간성에 대한 모욕적인 말까지 쏟아내고는 절교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놀랍지가 않았다. 친구를 잃는다는 두려움도 없었다. 예상못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했어야 하는 말을.. 만남 횟수를 줄이고 연락을 줄이며 늦춰왔던 것 뿐.. 평소의 친구 태도를 아는 나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해보였고 해결하려고 하는 순간 파국이라는 걸 직감했던 것 같다. 인연의 유효기간이 다 되어 갔던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해서 전화했더니 연락 차단! 그렇게 우리 사이는 끝났다. 친구는 본인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 일방적으로 끝을 냈다. 역시나 끝내 내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았다. 예상했고 미련도 없고 마음은 편했다.

그러고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갑자기 문자가 왔다. 그때 미안했다며 다시 친구하자고. 이게 무슨 개떡같으어랴ㅁㅎㄴㅅ.. 덕분에 이번에는 내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너무나 일방적이었고 언제가는 끝나도 끝났을 사이라고.. 이제 친구가 불가능하다고. 잘 지내라고.. 진짜 끝. 마음으로 진짜 끝을 내고, 그리고 마지막을 고하는 문자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야 마음이 먹먹해진다...

우리의 어린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잘 아는, 소중하고 애틋한 추억이 많은 내 친구야..이제는 안녕. 
 

관계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릴 때는 비슷한 환경,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제약이 있는 활동 가운데 우리가 즐겁게 만난 사이였다면, 이제는 우리가 놓인 처지가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모두가 자기의 인생은 힘들 것이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우리 모두는 필요하다. 그게 너이면 좋겠지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위로하기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놓친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너를 위로해 주기에는 나는 지쳐있었고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더욱 필요했다. 그게 안된다면 나는 그냥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인연은 때가 맞아야 이루어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본래의 뜻은 인연에는 때가 있으니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그 의미가 시절의 인연. 그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인연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한 때 지극한 마음으로 맺었던 인연도 자연히 멀어지거나 끊어질 수 있다. 한 시절이 끝나면 당시에 맺은 인연이 끝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다가온 하루이다.
 
 
@꿀꿀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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