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우리는 인생을 크게 생산, 유지, 여가 활동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일을 하면서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생산), 가사 일은 마지못해 할 때가 많으며(유지), 막상 일에서 벗어난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여가). 돌이켜보면 많은 시간을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
복잡하고 기쁨과 고통이 반복되는 삶에서 무심함을 잃지 않고 충만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삶은 경험의 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고, 경험의 내용은 감정, 목표, 사고와 관계가 깊다고 한다.
일은 일 자체로 즐거움을 얻고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한 작업에도 맥락을 이해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여가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쏟고 능동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다.
인간관계에서도 정성이 필요하다. 대화를 유익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으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관심과 목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가 필요하다. 아무리 힘든 일도 목표가 있으면 견디고 그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책을 읽으며 내 인생을 계속해서 뒤돌아봤다.
이십대에는 호기심이 많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인생을 경험하고 싶었고 여행처럼 인생을 살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떠났다. 다양한 인생, 다양한 가치관을 접하며 인간을 이해했고 공감했다. 하지만 커리어 관리는 제대로 못했다.
삼십대가 되면서 나의 관심사는 일에서 인정받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이었다. 전문직에 도전했고 높은 연봉을 추구했다. 모든 에너지를 일에만 쏟았고 일 년마다 번아웃을 경험하고 반복했지만, 높아가는 연봉에 만족하며 내 에너지와 일 이외의 나머지를 놓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는 인간관계는 아예 포기했었다.
일에 모든 영혼과 체력을 몰아넣다 보니 한계가 왔던 것 같다. 사십대가 가까워지며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과 여가, 그리고 나 자신 간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변화의 과정을 겪으며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일에서는 내 실력을 발휘하며,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재탐색 중이다. 여가 시간에는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운동, 독서, 영어공부, 경제공부, 데이터분석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활동은 예술 작품(그림) 감상하기. 인간관계는 새로이 네트워킹을 하고 있다. 성장을 자극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대화가 가능한 교류를 하려고 한다. 나 자신과의 시간도 필요했다. 일기를 쓰고 있다. 나를 아는 시간, 지금 왜 힘든지, 왜 기쁜지, 왜 화가 났는지, 내 감정을 이해하고 나를 알아가려고 한다.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일상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니체는 말했다. 목표가 명확한 사람만이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이 자신에게 선이 될지, 악이 될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인생의 전환기마다 세웠던 목표를 놓고, 삶을 뒤돌아보니 후회하고 놓쳤다고 생각했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기회였고,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거친 뒤 더 값진 것들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새긴 나의 인생 슬로건. "하루는 열심히, 인생은 되는대로"
책 구절들..
일상의 구조.
지금 이 순간과, 언젠가 불가피하게 맞이할 임종의 순간 사이에서, 살아가는 길을 택하든가 죽어가는 길을 택하든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삶은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의 길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아까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복잡다단한 이 세상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충만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리라.
'삶'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선인들의 지혜에 귀 기울이는 한편 그 지혜를 과학이 꾸준히 축적해 온 앎과 접맥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의 시점에서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길을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은 모처럼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차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마음이고 그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이다.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그런데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생산, 유지, 여가라는 세가지 주요 기능이 우리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생산활동: 근무나 공부, 담소, 식사, 유지활동: 가사, 식사, 몸단장, 출퇴근, 여가활동: 티비, 독서, 취미, 운동, 영화, 외식, 담소, 교제, 휴식, 빈둥거리기)
경험의 내용.
자신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강인하며 민첩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지는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 도가 크게 달라진다.
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우리가 사고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력에 질서가 갖추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신의 작용을 깊이 있게 파고들려면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이 이루어진다.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롭게 집중될 때 삶은 마침내 제 스스로 힘을 얻는다.
일과 감정.
삶의 질은 일평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먹을 때, 여가를 능동적으로 즐길 때,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장 큰 행복을 맛보며..
밤에 일기를 적거나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 버릇을 들이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분히 추려낼 수 있다.
정말로 성숙해지려면 대화를 통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를 만나야 한다.
경험의 질에 창조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누구와 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여건에서 하느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산책과 휴가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관점을 바꾸며 자기의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자신의 취향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다.
일의 역설.
일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일을 하는 동안엔 거기에서 벗어나고픈 유혹에 시달리는 것이다.
일은 산만함을 누르고 집중력을 살린다. 이상적인 경우는 일의 난이도가 일을 하는 사람의 실력과 엇비슷할 때다.
일을 통해 느끼는 경험의 질이 예상 밖으로 긍정적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다 보면 어려움도 많고 내면의 갈등도 심할 수 밖에 없지만 미지의 영역으로 정신을 넓히는 데서 느끼는 희열은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을 노령의 연구자들마저도 항상 느끼는 즐거움이다.
여러분을 즐겁게 하는 건 일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문제는 일을 어떻게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통해 어떤 경험을 끌어내는가에 달려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에 전념하면서도 인생을 다채롭게 꾸려간 사람의 예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
여가는 기회이며 동시에 함정.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몰입을 낳는 활동은 대부분 명확한 목표, 정확한 규칙, 신속한 피드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가 시간에 운동을 한다거나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몰입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진다.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나같이 처음에 어느 정도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그다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여가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과학과 예술이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 연구, 시 쓰기, 그림 그리기, 작곡 등은 여가 활동으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직장 일에서 도저히 흥미를 못 느끼겠다면 여가 시간만이라도 몰입 경험을 할 수 있는 참다운 기회를 찾아 나서는 데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자신과 주변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 세상은 흥미진진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인간관계와 삶의 질.
인간관계에서 득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성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우리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결론짓는 사르트르의 작품 속 주인공과 같은 운명에 처할 위험에 봉착한다.
이상적 우정은 결코 한자리에 고여 있지 않다. 우정은 늘 새로이 정서적, 지적 자극을 주어 권태난 무감각이 스며들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의 사귐이 일시적이고 피상적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정서적 위기를 맞이한 성인들이 자주 토로하는 고백 중 하나가 바로 참다운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일반화시켜서 말하자면 사람이 하루 중에 느끼는 감정의 기복에서 조절판 역할을 하는 것이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만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한 글에서 지적하는 내용은, 식구 하나하나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정에는 두 개의 거의 상반된 특성이 공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원칙과 자발성, 규율과 자유, 높은 기대와 무조건적 사랑의 공존이다.
내향성 일변도에서 외향성 일변도에 이르는 전 범위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삶의 패턴을 바꾼다.
"그저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일만 해왔을 따름"이었다.
그들의 삶이 나나 여러분의 삶보다 객관적으로 보아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삶에 대한 강한 열정이 그들로 하여금 몰입 경험을 그만큼 자주 하게 한다는 건 분명하다.
자기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체 맥락을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미칠 영향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직업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좀 더 현실성이 높은 방안은 일에서 얻는 보상과 인간관계에서 얻는 보상의 의미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음식, 따뜻함, 신체적 보살핌, 돈이 제공하는 물질적 에너지며,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정식적 에너지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결혼 생활에서 섹스보다 더 중요한 게 대화라고 확신한다."
리더십을 갖추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표도 배려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지식이든 감정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대화를 유익하게 나누는 비결은 따로 없다. 먼저 상대방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기 목적성을 가진 사람.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창조적인 사람은 대체로 자기 목적성을 중요시한다.
자기 목적성을 중시하는 사람의 관심사가 수동적이거나 관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해하려는 의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다.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다.
관심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은 경험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삶의 질로 직결된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여 그 현실성을 인정한 다음, 우리가 선택한 다른 대상으로 하루빨리 관심을 돌릴 때만 우리는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관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유전 명령과 사회 관습, 우리가 어릴 적에 익힌 버릇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생물학과 문화가 정해놓은 교본을 점점 더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이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운명애.
자기 목적성이 뚜렷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의식에서 무질서를 크게 줄인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172p)
그 어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의 환상에서 비롯된 그 어둠의 오만 무쌍함 앞에서 웃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 기분이 상승세에 있을 때 삶을 반추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보다 간접적으로 자아에 조화를 가져다주는 목표와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는 게 좋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면 덜 괴롭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상대성 원리나 최근의 프랙털 기하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같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상이한 다발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관찰자의 시점, 보는 각도, 시간대, 렌즈의 배율에 따라서 동일한 밑바닥의 진리가 아주 판이한 모습으로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주입된 믿음과는 판이한 세계관이나 인생에 대한 발언을 이단으로 몰아붙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현대 과학이 알아낸 물질과 에너지의 성격은 선과 악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엔트로피가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쪽이 훨씬 편한데 왜 우리는 굳이 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영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진화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남들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삶을 즐겁게 만드는 목표를 찾아낼 수 있을까?... 과학이 제공하는 낙관적 미래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화의 큰 틀 안에서 일상생활의 의무에 집중할 때 맛보는 충실한 몰입 경험은 우주의 미래를 엮어나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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